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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636종 수목자료

큰별&장풍이 2011. 2. 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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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죽순대
(Phyllostachys pubescen Mazel (영) Moso Bamboo (일) モウソウチク (漢) 孟宗竹<맹종죽>, 江南竹<강남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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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옛날부터 소나무와 함께 선비의 기품과 절개를 상징한 나무로 유명하다. 삼국사기 열전 최치원 조에는<항상 난세를 만나 처신하기가 어려웠고 곧잘 비난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스스로 불우함을 한탄하고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기로 하였다. 그는 산림과 강과 바다를 소요하며 누대와 정자를 지어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놓고 책 속에 묻혀서 풍월을 읊었다>한다.


고려사 열전 제7 양규 조에는 <그대의 남편은 장군의 지략을 갖추었고 지식은 정치하는 방도에도 능통하였다. 항상 송죽 같은 절개를 지키어 오더니 끝끝내 국가에 충성을 바쳤다>, 같은 열전 지채문 조를 보면 <내가 적의 침략을 피하여 허둥지둥 먼 곳으로 피난할 때 따라 오던 신하들이 모두 도망갔으나 오직 지채문만은 풍상을 무릅쓰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말 모는 수고도 서슴지 않고 끝내 송죽 같은 절개를 세웠으니 그 특출한 공훈을 생각할 때 내가 어찌 특이한 은전을 아끼리오>하였으며 조선왕조 건국과정에 희생된 정몽주도 송죽교에서 희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비의 절개에 비유한 내용이 수 백 건 있다.


기타 대나무의 쓰임새 등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문무왕12년(672)조에는 당나라 황제에 알리지 않고 백제를 토벌한 후 청죄의 표를 올린 내용 중에 <...남산의 대나무도 저의 죄를 적기에 부족할 것이요, 포야산의 나무도 저의 착고(차꼬, 옛 형구의 일종)를 만드는데 부족할 것이니, 종묘와 사직을 연못으로 만들고, 저를 죽여 몸을 찢어 버리더라도, 이 사정을 듣고 나서 친히 판단하여 주신다면 기꺼이 형벌을 받겠습니다>하여 변방 소국인 신라임금의 비애를 엿보게 한다. 대나무에 죄를 적는 다는 내용에서 신라중기까지도 종이가 그렇게 흔치 않아 죽간(竹簡)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한편 악기재료로 사용한 예는 지(志)의 악(樂)조에 <...향삼죽(鄕三竹)은 역시 신라에서 시작되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기(古記)에는 '신문왕 때 동해 가운데에 갑자기 작은 산이 생겼는데,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 한 포기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갈라져 두개가 되고, 밤에는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대나무를 쪼개어 적(笛)을 만들게 하고, 이름을 만파식(萬波息)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는 없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여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전 만파식적을 보면 대나무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삼국유사, 이민우 옮김, 범우사간에서 발췌).


제31대 신문대왕은 681년 7월 7일에 즉위하여 그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해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感恩寺) 를 세웠다. 이듬해 5월 초하룻날 해관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 속에 있는 조그만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을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하니, 왕이 이상히 여겨 일관 김춘질에게 명하여 점을 치게 했다. 일관이 말하기를 '대왕의 아버님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계시고, 또 김유신 공도 삼십 삼천의 아들로서 지금 인간으로 내려와서 대신이 되었습니다. 이 두 성인께서 덕을 함께 하여 이 성을 지킬 보물을 주려고 하오니, 만일 폐하에서 바닷가로 가시면 반드시 값으로 칠 수 없는 보물을 얻으실 것입니다' 했다. 왕은 기뻐하며 그 달 7일에 이견대 (利見臺)로 나가 그 산을 바라보고 사자를 보내서 살펴보게 했더니, 산 모양이 마치 거북의 머리처럼 생기고 그 위에 한 줄기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쳤다.

사자가 와서 이대로 아뢰니 왕은 감은사로 가서 묵었는데, 그 이튿날 오시에 대나무가 합쳐져 하나가 되더니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가 심하게 몰아치며 7일 동안 어두웠다가 그 달 16일에야 바람도 자고 물결도 평탄해졌다. 왕이 바다 위에서 그 산을 찾으니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갖다가 바쳤다. 왕은 용을 영접해서 자리에 앉게 하고 묻기를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혹 갈라지기도 하고 혹 합쳐지기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용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비유컨대 한 손바닥을 치 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을 치 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는 합쳐져야만 소리가 나니 성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대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께서 마음을 같이하여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했다.


왕은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금과 옥을 주고서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바다에서 나오니, 이 때 산과 용은 갑자기 모양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왕은 감은사에서 자고 17일에 지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 이공(理恭)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기를, '이 옥대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했다. 왕이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니, 태자가 대답하기를 '한 쪽을 떼어서 물에 담가 보십시오' 했다. 이에 왼쪽 둘째 번 쪽을 떼어 물에 담그니 즉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곳은 못이 되니 그 못을 용연(龍淵)이라고 했다.


왕은 대궐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의 천존고에 간직해 두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비올 때는 개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았으므로 이것을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보로 삼았다.


상록 단자엽 식물로서 남부 지방에 식재하고 있으며 나무높이 10∼20m, 지름20cm에 달한다. 죽간의 마디에는 고리가 사실은 2개이나 1개처럼 보이고 가지에는 2∼3개씩이다. 죽순은 5월에 나오고 포는 적갈색이며 검은 갈색 반점과 털이 밀생한다. 잎은 작은 가지 끝에 3∼8개씩 달리고 피침형이며 길이 7∼10cm, 너비 1.0∼1.2cm로서 점첨두, 예저이고 가장자리의 잔톱니가 빨리 없어진다. 엽초에 잔털이 있고 견모는 곧으며 빨리 떨어진다. 대나무는 60년 주기로 꽃이 피며 핀 다음에는 죽는다.


* 대나무 종류 구분하기

대나무는 마디마다 테가 있는데, 테가 1개처럼 보이면 죽순대(맹종죽)이고 두 개이면 왕대나 솜대이다. 잎이 크고 긴 것이 왕대, 작은 것이 솜대이다. 오죽은 이름 그대로 줄기가 검으므로 다른 대나무와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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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공 : 박상진 (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