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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大吉 建陽多慶

큰별&장풍이 2011. 2. 4. 11:25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거천래 래백복 (去千災 來百福)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

 

1).입춘의 유래

24절기의 첫 번째. 음력으로는 정월 절기이며 양력으로는 2월4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일 때.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음력으로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섣달과 정월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재봉춘 (再逢春)이라 한다.
입춘 전날이 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처럼 본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1.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2.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3.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2). 입춘의 풍속
입춘첩: 입춘에는 각 가정에서 좋은 뜻의 문귀를 대문기둥, 대들보,천장 등의 집안 곳곳
에써 붙였는데, 이를 입춘첩, 입춘방이라 한다.

입춘수: 입춘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다. 이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을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다.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

맥근점: 보리뿌리로 그 해의 농사를 점치는 것이다. 늦가을에 심은 보리가 입춘 때 쯤이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보리 뿌리를 파보아 뿌리가 세 갈래면 풍년이고 두 갈래면 평년
작, 시들었거나 하나뿐이면 흉년이들 징조하고 하였다.

3). 입춘첩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에는 각 가정에서 좋은 뜻의 문귀를 대문기둥, 대들보, 천장 등의 집안 곳곳에 써 붙였는데 이를 입춘첩이라 하였으면 대구와 단구가 있다. 입춘첩은 집집마다 문구가 다른 경우도 있으나 그 대의는 나라와 집안의 안녕, 풍농, 변영, 소재, 길상, 장수, 화친, 등과 등을 기원 한다.

 

 

4). 오신반
입춘날 먹는 대표적 시절음식으로는 오신반이 있다.오신반은 다섯 가지의 맵고 자극이 강한 모듬나물을 의미하는데, 경기도의 산이 많은 6개의 고을(양평, 지평, 포천,가평, 철원, 연천)에서 움파, 멧갓(말린갓), 승검초(신감초) 등의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 임금님께 진상하고 겨자와 함께 무쳐 수라상에 올렸는데 민간에 서는 이를 본받아 입춘에 절식으로 먹는 풍습이 생겼다.
지역에 따라 재료의 종류는 차이가 있으나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노란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 나는 나물을 배치해 먹었다. 이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있으며, 일반 백성들에세는 가족의 화목을 상징하고   仁, 義, 禮, 智의 증진을 의미한다.

 

또다르게 권하는 입춘에 좋은 음식

입춘날(올해는 양력 2월4일/ 수요일) 에는 춘련(春聯)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 하여 좋은 글 곧 '입춘대길(立春大吉)' 등을 써서 대문에 붙이고 일 년이 길하기를 축원하였다. 이 날은 입춘 오신반(立春五辛盤)인 시고 매운 생채 요리를 만들어 새봄의 미각을 돋게 했다. 또한 장을 담그는 시기이기도 하다. 음식으로는 탕평채(湯平菜), 승검초 산적, 죽순 나물, 죽순찜, 달래나물, 달래장, 냉이 나물, 산갓 김치 등이다.

나물
입맛을 돋게 하는 생채의 재료로는 냉이, 달래, 움파, 멧갓, 승검초싹 등이 있다. 이들은 경기도의 산골 지방 육읍에서 해마다 선물로 진상했다 한다.

냉이 나물
채소 가운데 단백질, 칼슘, 철분의 함량이 가장 풍부한 알카리성 식품이다. 2월에서 3월경 들이나 밭에 새싹이 돋는데 흰색 의 잔꽃이 피기 시작하면 쇠하여 먹지 않는다. 뿌리까지 깨끗이 다듬어 봄에는 모시조개를 넣고 냉잇국을 끓이고, 끓는 물에 데쳐서 고추장 또는 된장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 냉이 나물을 한다.

달래 나물
밭이랑이나 논길에서 이른봄이면 전국 어디서나 캘 수 있다. 알뿌리가 크고 둥근것이 매운 맛이 강하다. 온상 재배는 맛이 순하다. 음식으로 할 때는 알뿌리의 겉쪽 얇은 껍질은 벗기고, 수염도 함께 깨끗이 물에 씻는다. 달래는 되도록 생것으로 조리하여야 비타민C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달래전, 달래 생무침, 달래 된장찌개 등을 해먹는다.

죽순채와 죽순찜
죽순은 대나무의 지하경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싹이다. 초봄 곧 눈이 녹아내리는 물을 듬뿍 흡수한 죽순은 감로 덩어리다. 키가 40, 50센티미터 자랐을 때 조심스레 밑등을 약간 비틀듯이 하여 끊는다. 신문지에 재빨리 싸서 밑손질도 빨리 해야 그 맛이 특별나다. 요리를 할 때는 쌀뜨물이나 겨를 넣고 삶아 떫은맛을 빼고, 냉수에 담갔다가 껍질을 아래쪽부터 깨끗이 벗긴다. 음식은 얇게 저며 절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죽순회와 죽순채, 죽순 장아찌, 죽순찜 등이 있다.
죽순채는 죽순을 빗살 모양으로 썰어서 볶은 나물이다.
죽순찜은 죽순을 큼직하게 절어 갖은 양념하여 폭 찜을 한 것이다. 곧 다진 고기를 양념하여 죽순을 어여서 소를 박고 채소 볶은 것을 냄비 밑에 깔고 죽순을 얹는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 끓이는데 이때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 넣으면 걸쭉해진다. 달걀 지단채와 버섯 볶은 것을 얹어 낸다. 생것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통조림을 구하여 쓰는데, 이때는 빗살 모양으로 된 속의 사이사이에 석회가 엉겨 붙어 있으므로 깨끗이 씻어 내고 요리 한다.

장 담그기
장을 담그는 시기는 입춘날 전에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 단오날을 넘

기면 소금이 많이 들어 맛이 없고, 날이 따뜻하여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맛있다. 장은 팔진미의 주인이라 했으니 장맛이 없으면 모든 음식이 제맛을 못 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기, 생선, 기타 해물을 섞어 특별한 장을 만들어 음식에 넣으면 조미료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간단히 개량 메주로 편리하게 담가 쓰기도 한다.

진간장(眞醬)
메주로 담그는데 이것은 절간에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장과는 달리 메주를 12월에 쑤어 5월 초순에 담궈서 90일 되는 날 간장을 뜨는 점이 다르다. 진장맛은 절메주에 달렸는데 고종 때까지 나라에서 창의문 밖 절메주 전문가에게 추수절에 콩을 주어 메주를 쑤어 오게 했는데, 콩 한 섬이면 다섯 말만 받고 나머지는 그 보수로 주었다 한다.

된장
간장, 진장을 뜰 때 메주나 절메주를 가만히 들어 내어 으깨어 항아리에 담고 소금을 뿌려 두는데 너무 되면 소금물이나 묵은 장을 섞고, 너무 짜면 찹쌀과 멥쌀을 반반으로 섞어 밥을 지어 함께 찧어서 담는다.

탕평채(湯平菜)
봄이 오는 소식이 들리면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노곤함이 밀려 온다. 하는데 새콤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훨씬 상쾌 해진다. 탕평채는 이백여 년 전 조선의 영조(英祖) 대왕이 당파 싸움을 없애기 위하여 노론, 소론을 폐지하자는 탕평책을 논하였던 날 처음 선을 보여서 얻어질 이름이라고 옛 기록에 적혀 있다. 탕평채는 녹두묵을 젓가락 굵기로 썰어서 참기름, 소금으로 가볍게 버무려 담고 숙주, 짧게 자른 미나리, 물쑥 등은 데치고 다진 고기는 볶고, 김 부순 것, 달걀 황백 지단은 채 썰어 옆옆이 담아, 달고 새콤한 초장을 뿌려서 먹는다. 묵무침은 봄에는 녹두묵, 가을에는 도토리묵, 겨울에는 메밀묵이 제격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의미】立春大吉(입춘대길)은 입춘이 되어 크게 길하다.는 뜻으로,

  입춘(立春) 날에 ‘건양다경(建陽多慶: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과 함께

  대문이나 대들보 및 마루기둥에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 춘첩(春帖)은

 대표적인 입춘 행사의 하나다.
 한자로 써서 대문의 좌우측에 여덟팔자 형태로 붙인다.

             입춘첩이나 입춘축(立春祝) 또는 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하는데,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등

            좋은 의미가 담긴 문구가 많다.
            입춘첩은 옛날 궁중에서 입춘을 맞아 문신들이 지어올린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시구를 골라 대궐의 기둥

           과  난간에다 내건 것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입춘대길이란 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선조 26년(1593년) 승정원에서 ‘사변(임진왜란)이

           안정되지 않아 춘첩자를 지어 바치지 못했으니

           입춘대길이라는 넉자를 정성스럽게 써서

           행궁(行宮) 안팎에 붙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고,

           임금이 수용함으로써 춘첩자로 나붙게 된 것이다.
           이는 조선 왕실에서 입춘대길이란 문구를 춘첩으로 사용한 첫 기록이다.

           그 시기 또한 송시열의 생몰 연대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새봄이 시작되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은 건양다경은 그 어원이 불분명하다.
            두 가지의 유래설이 나돌고 있다. 1896∼1897년에 사용된

            고종의 연호 ‘건양(建陽)’ 유래설은, 당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집마다 건양다경이라고 써붙인 것이 시초라고 본다.
            하지만 송시열과 비슷한 시기의 문신 미수 허목(1595~1682)의 글에서

            인용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리지만 고증 자료는 더 필요하다.

입춘을 ‘들 입(入)’자가 아닌 ‘설 립(立)’자로 쓰는 것은

‘立’자에 ‘곧’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춘은 ‘곧 봄’이라는 뜻.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머지않으리’라고 한 퍼시 B 셸리의 시를 연상케 한다.

 봄을 대하는 마음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바야흐로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입춘절’이 시작됐다.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크게 쓸 차례다.